택시는 세 갈래 길이 만나는 구석진 곳에 우리를 내려주었습니다. 각 길에는 읽을 수 없는 표지판이 서 있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죠. 한밤중이었고 공기는 숨이 턱 막힐 듯 차가웠으며,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동료가 알려준 주소와 지침은 간단했습니다. ‘빨간 간판을 찾고, 지하로 내려가서 3번 방을 찾으라’는 것이었죠. 강남 가라오케 나는 빨간 간판을 발견했고, 계단을 내려가 3번 방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몇 시간 동안, 나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로 생전 처음 들어보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전혀 몰랐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고 익숙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방은 우스울 정도로 작았습니다. 한쪽 벽에는 5명이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 앉을 수 있을 정도의 긴 의자가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마이크 몇 개와 리모컨, 그리고 간단한 안주와 술이 놓인 테이블이 있었습니다. 반대편 벽은 화면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붉은 조명 탓에 모든 것이 약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방 안은 소리와 비밀을 모두 흡수해버릴 듯한 두꺼운 방음재로 덮여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자 의자가 삐걱거렸고, 이곳이 공연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이곳은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날 밤 함께한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과 ‘집에 가고 싶지 않다’는 공통된 마음으로 우연히 모인, 아주 색다른 조합의 무리였습니다. 그곳에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때로는 애잔한 사연을 지닌 이도 있었습니다. 서울로 상경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남자도 있었고, 3년 동안 사귀다 헤어진 커플도 있었죠. 그리고 별다른 배경도 내세울 것도 없는 평범한 우리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노래를 통해 이동하고, 시골길을 사색의 공간으로 삼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예의 바르고 점잖게 굴었습니다. 그러다 한 친구가 거실에서 부르기엔 너무 난이도가 높은 발라드 곡을 골랐고, 우리는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그 ‘고수’조차도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노래방의 핵심 전략은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함께 어우러져 부르는 것이 중요하죠. 노래가 끝난 뒤 90점 이상의 점수를 보여주는 채점 방식은 누구나 아는 일종의 속임수 같은 것입니다. 90점을 받아도 별 감흥이 없고, 40점을 받아도 승자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기계는 거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측정할 수 없기에 그 숫자는 무의미합니다. 수줍음 많던 친구가 마침내 마이크를 잡았을 때의 그 순간을 기계는 측정할 수 없습니다. 친구가 가사를 잊어버려 즉석에서 지어낸 가사로 부를 때 터져 나오는 웃음도 측정할 수 없죠. 진솔한 감정을 담은 노래가 끝난 뒤 찾아오는 그 고요함 또한 측정할 수 없습니다. 기계는 그저 음정만 파악할 뿐, 그 외의 모든 것은 함께한 사람들이 느끼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곡은 점점 더 낯설고 개인적인 취향을 담은 곡들로 바뀌어 갔습니다. 한 친구는 어린 시절 즐겨 듣던 노래를 골라 눈을 감은 채 열창했습니다. 나는 마음에 드는 힙합 곡을 골라 온 힘을 다해 불렀습니다.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듀엣 곡을 선택해 노래를 끝까지 불렀고, 예전 밴드 시절 즐겨 불렀던—수년 동안 잊고 지냈던—노래도 진지하게 열창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기계는 내게 67점이라는 점수를 주었습니다. 그 숫자는 내 노력이 부족했음을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나는 헛웃음을 지었고, 그 작은 방 안에는 노래 소리가 메아리쳤으며, 정적 속에서 나는 낯선 기분을 느꼈습니다.
노래방 방은 좁았고,